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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문화일보 2010.1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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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의 감동을 읽어주는 남자>
지리산에 가면 소탈한 행복이 있다
누구나 일생에 로맨스, 가족 영화, 버디 무비 등 세 편의 영화를 찍는다고 한다. 여기 그 세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찍는 사람들이 있다. 번듯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돈을 쓰지 않아도 되기에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삶을 선택한 버들치 시인과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서울에서 쫓겨나 남행열차에 몸을 실은 기자 출신의 낙장불입 시인, 그리고 다재다능한 작가인 공지영 등이 주연배우다.
‘새마을 운동’이 ‘뉴타운’으로 이름만 바꾸는 사이에 좋은 학벌, 많은 돈, 넓은 집 같은 획일적인 욕망은 좀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햇살 좋은 지리산 자락에 있는 움막 같은 빈집에 자리를 잡으면 그게 행복의 시작이다. ‘스스로 발등을 찍은 녀’(스발녀)일지라도 지리산에 놀러왔다가 우연히 만난 이와 사랑에 빠져 움막에 숟가락 두 개 들고 들어가 살림을 시작하면 바로 로맨스다.
두 시인은 존재 자체가 버디 무비를 찍는 것이다. 공 작가는 힘이 들고 지치고 문득 서러울 때 무작정 길을 나서 그들에게 달려간다. 섬진강을 바라보며 꽃들이 피어나는 소리를 들으며 술을 마시고 싶은 공 작가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그들과 조연배우들이 모두 모이면 바로 한 가족이 된다.
그곳에는 도시의 자욱한 치졸과 무례와 혐오는 없다. 인간이 입에서 뿜어내는 독화살도 없다. 돈도 많이 필요 없다. 광주 잠 하루 5만원이지만 지리산 잠 한 달은 5만원이니 말이다. 하지만 연봉이 200만원에 불과할지라도 휴대전화는 필수다. 발신은 정지돼도 수신은 돼야 술이라도 얻어먹고 사니까.
서울에서의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었지만 그곳에서의 시간은 무엇을 해도 내 시간이다. 지리산에는 누가 와도 어울린다. 지리산이 한결같이 내주는 약초와 버섯을 달여 먹으니 암에 걸린 사람마저 완치가 된다.
공 작가는 왜 지리산의 그들을 찾는가? 정이 계곡의 푸른 물줄기 소리처럼 늙을 줄을 모르는 그곳이야말로 사람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설사 내가 모든 것에 실패한다 해도, 설사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외면 받는다 해도, 설사 어느 날 내 인생이 이게 뭐야 마음속으로부터 절규가 불길처럼 뿜어져 나온다 해도, 외양간은 텅 비고 과일나무는 쓰러지고 산야가 불타버린다 해도, 그곳을 생각하면 세상에 무서운 게 없고 흐뭇해지기 때문이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오픈하우스)를 읽고 난 후 나는 그만 병이 도지고 말았다. 나도 세 편의 영화를 한꺼번에 찍고 싶은 열망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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