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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한겨레신문 2010.1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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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지 작가’의 지리산 벗님들 대공개
‘꽁지 작가’가 엿본 지리산 사람들의 이야기. 그냥 엿본 게 아니다. 무지무지하게 질투한다. 그 여유와 행복을 탐한다. ‘지리산행복학교’의 주인은 작가 공지영이 아니다. 지리산에 깃든 버들치 시인은 공씨 성을 가진 이 소설가를 “꽁지야~” 하고 부른다. 그래선가. 스스로도 ‘꽁지 작가’란다.
샘이 나서일까. 꽁지 작가는 작심하고 “서울은 깊은 겨울”인데 “희디흰 매화꽃이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치 시인 박남준의 지리산 집을 뻔질나게 찾아간다. “그 밤 우리가 마시는 소주잔 위로 매화꽃이 분분했고 매화 향기는 봄바람을 타고 쿵작작 쿵작작 삼박자로 우리 주위를 감쌌다”던 그 집에서 그 시인의 인생이력과 요사이 사는 모양새를 보도하느라 바쁘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는 “지리산을 등에 지고 섬진강을 내다보며 옹기종기 살고 있는” 꽁지 작가의 벗들, 곧 버들치 시인과 친구들이 어우러져 사는 ‘지리산 행복학교’의 일상 이야기다. 버들치의 ‘이웃동네’ 지리산 꼭대기 피아산방에 사는 ‘낙장불입’ 이원규 시인과 그의 씨억씨억한 아내 고알피엠(高RPM) 여사. 낙장불입 시인을 생명평화 운동에 나서게 하고 자식처럼 아껴준 수경 스님, 버들치의 친구로 연봉 200만원 주차관리요원이며 이웃들의 아픈 속내를 잘도 들어주는 ‘내비도’ 최도사, 소싯적 열여덟에 해방을 맞아 구례경찰서의 일본 경찰을 다 쫓아냈다는 40년 지리산 지킴이 함태식씨. 가오리찜 안주를 맛나게 내놓았던 구례의 아주머니와 악양막걸리와 하동의 귀농 부부.
이들이 지리산행복학교의 ‘넉넉한’ 주인공들이다. 너무 예뻐서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꽃모양으로 당근을 깎고 갓으로 붉게 물들인” 동치미를 담글 줄 아는 노총각 버들치 시인에겐 사람이 모인다. 술입네, 반찬입네 한사코 거절해도 갖다 놓고 가는 여인네들뿐이랴. 남녀 막론, 각지에서 찾아오는 통에 그 집 앞은 길이 막힌단다. 용하다는 점쟁이가 한눈에 ‘우리 계의 큰 어른 되실 분’으로 알아봤다는 버들치 시인은 석 달 내내 귀신이 찾아와도 함께 그 긴 밤을 잘도 지냈으되 ‘독한 사람들’은 참으로 무섭단다. 집 앞 개울에 시인이 키우던 버들치들을 전기충격기로 죽여버린 덩치 큰 남자들한테 큰 용기를 내어 덤볐다가 얼굴에 피멍이 들었다.
초등 5학년 때 ‘오랜만에 오신 삼촌, 간첩인가 다시 보자’라는 반공표어로 큰 상을 받은 아이는 의기양양 집으로 뛰어왔다. 그 상장을 본 어머니는 세상에 태어나 가장 슬픈 얼굴을 보인다. 아이의 아버지는 낙오된 빨치산으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탄광에 들어가 이름을 바꾸고 죽어갔다. 낙장불입 이원규 시인의 유년이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아내와도 이별하여 혼자가 된 그가 지리산에 들어온 이유는 아버지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 생명, 평화, 환경운동에 앞장서는 스님과 신부님들에 대한 대응이 각박해졌는데, 한번은 모처에서 누가 찾아와선 “두루두루 몸조심하십쇼. 여자 문제며 이런 거 저희가 조사 들어갔습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 신부님(후일 신부님이 아닌 명진 스님으로 밝혀졌다)이 격노하였다. “여자 문제? 설사 그런 일이 있다고 치자. 너희는 마누라하고 날마다 하면서 혹시 여기 계신 분들이 평생 한두 번 한 걸 걸고넘어진다고? 이 치사하고 나쁜 놈들!” 그러자 거짓을 참지 못하는 낙장불입 시인이 정론직필했다. “신부님, 아무리 그래도 틀린 말 하시면 안됩니다. 결혼했다고 날마다 하는 거 아니에요.” 사람들이 웃음보를 터뜨리는데 신부님과 스님들은 진지하게 낙장불입 시인에게 물었다. “정말?”
이들이 지리산행복학교의 ‘사랑스런’ 주인공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속삭이고 함께 어우러져 취하는 ‘꽁지 작가’의 행태 역시 사랑스럽기만 한데, ‘지리산 행복학교’는 그러니까 자연의 순리에 몸을 내맡겨 생명을 사랑하고 평화를 위해 싸우고 소박한 삶에 탐닉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들이겠다. 그 산의 품안에서 50만원이면 1년을 지낸다는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이야기이겠다.
그 삶을 질투하면서도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그 여유를 탐하면서도 가난을 스스로 택하지 못하는 꽁지 작가는 ‘우리들 도시 서민’의 모습을 닮았다. 그 행복학교는 이리 와서 같이 놀자고 자꾸만 유혹하지만 그래도 자주 찾아가지는 말 일이다. 너무 북적이면 지리산 행복동네 사람들이 슬퍼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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