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마족 시인’이 만난 도처의 인생고수들
“나는 폭주족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기마족이다.”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모터사이클을 몰고 지리산 골골을 누비고 다닌대서 ‘지리산 폭주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곤 하는 이원규 시인이 볼멘소리로 항변한다. 그가 옳다. 모터사이클을 탄다고 모두가 폭주족일쏘냐. 그는 위험과 전율을 좇아 곡예 운전을 즐기는 쪽이 아니라, 잃어버린 기마민족의 전통을 되살리려 할 따름이다. 탈것이 말에서 기계로 바뀌었달 뿐.
이원규의 새 산문집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는 그가 자신의 ‘애마’를 타고 지리산은 물론 전국의 이 골짝 저 들판을 누비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책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에서 그는 ‘낙장불입 시인’이라는 또 다른 별호를 얻기도 했거니와, 악양 동네밴드나 지리산학교 등 <…행복학교>의 뒷이야기에 해당하는 사연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모터사이클을 타고 19번 국도를 달려 지리산학교에 간다. 동네밴드 공연을 보러 간다. 지리산문화제에 시 낭송을 하러 간다. 룰루랄라 한바탕 잘 노는 새로운 공화국을 꿈꾸며.”
역시 <…행복학교>의 등장인물인 ‘버들치 시인’ 박남준과 함께 21세기형 안빈낙도를 보란듯이 실천하고 있는 그의 삶은 탐욕과 거짓에 찌든 우리네 삶을 새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런데 책을 읽어 보면 그 역시 세상 도처의 ‘고수’들한테서 수시로 가르침을 얻는 모양이다. 가령 벌교 장터에서 4·9일 장날에만 돼지국밥을 단돈 이천 원 받고 팔면서도 이마저 비싸서 미안하다는 투인 김행금 할머니. 사진을 찍겠다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시인을 보며 “근데 아자씨, 밥은 묵고 댕기냐?” 묻는 김 할머니한테서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다.
이밖에도 건강이 나빠져서 키우던 소를 다 처분한 뒤 빈 외양간이 눈에 밟혀 지푸라기로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짚풀공예가 신남균 할아버지, 뇌출혈을 딛고 일어나 일흔넷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한숙자 할머니, 한국인 아빠와 필리핀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열네 살 소녀 트로트 신동 강언나, 사재를 털어 철새들의 먹이를 나눠주고 산란터를 만들기도 하는 서산의 수의사 김신환 원장 등이 시인의 ‘스승’으로 등장한다. “낮은 자리, 젖은 자리에서도 정직한 희망과 진정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 그리하여 마침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모든 생명들”을 대표하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 역시 한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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