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우리 시대 화두다. 우리는 흔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하면, 수십조 원을 기부한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깊은 전통이 있었다. 권오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등 한국학 전문가들로 구성된 뿌리회는 명문가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을 찾고 있다. 뿌리회는 이들 가문이 ‘명문가’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현실 정치와 사회를 이끈 ‘권력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예와 덕’이라는 기준에 부합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범으로 호출되는 명문가 이야기를 담은 두 권의 책이 출간됐다. 뿌리회가 조선시대 명문가 10곳의 역사를 풀어낸 ‘명문가, 그 깊은 역사-500년 조선사회를 이끈 정신’(글항아리·왼쪽 사진)과 종부와 종부의 음식을 기록한 ‘종가를 지켜온 종부의 손맛’(오픈하우스·오른쪽)이다.
‘명문가, 그 깊은 역사’는 한양 조씨 정암가문, 창녕 성씨 청송가문, 창녕 조씨 남명가문, 영일 정씨 송강가문, 풍산 류씨 겸암·서애가문, 무안 박씨 무의공가문, 해주 오씨 추탄가문, 파평 윤씨 명재가문, 한양 조씨 주실가문, 여주 이씨 퇴로가문 등 모두 열 가문을 다루고 있다.
이들이 명문가로 뽑힌 것은 관료를 많이 배출하고 권력의 정점을 누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기준으로 살피면 아첨하고, 권력에 영합하거나, 타락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가문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 뿌리회는 유교의 예와 덕을 조선 명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조선의 양반은 지식인을 자처했고, 인격의 밑바탕을 유교 경전과 역사서로 다졌으며, 이들이 벼슬로 나간 것도 이 같은 공부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벼슬길에 대한 열망, 탄탄한 경제력, 학맥과 혼맥의 단단한 결속이 현실적으로 중요하긴 했으나 그 중심에는 항상 권력과 힘보다는 도와 예의 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뿌리회는 설명한다.
책은 뿌리회의 ‘조선을 이끈 명문가 지도’에 이은 두 번째 책으로 각 가문의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
‘종가를 지켜온 종부이 손맛’은 KBS 2TV ‘생방송 오늘’을 통해 방영됐던 종부의 손맛 프로그램의 결과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흔히 종가의 음식이라고 하면 비싼 재료로 만든 화려한 음식을 떠올리기 쉽지만 최고의 음식을 준비한 제사상을 제외하곤 평소엔 소박한 음식을 즐겼다.
책은 각 계절 재료를 사용한 종갓집 내림음식을 소개하는 한편, 각각의 이력을 가진 평범한 여인들이 종가로 시집와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모습도 담았다.
엄격한 예와 법도의 종갓집, 그 중심에 선 종부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다양하게 세상과의 소통을 꾀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주 이씨 오리 종가의 13대 종부 함금자 씨는 종택을 정비해 박물관을 개관했고, 김치 명인 강순의 종부는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손맛과 입담을 과시하며 종가 음식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있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4041401032530023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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